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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결말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한 번만 보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관객들 눈 뜨고 코 베이는 영화

 

우선, 이 영화는 적어도 두 번 봐야 합니다. 제가 이틀 전 포스팅에서 <나이브스 아웃> 1편에 대해 최대한 스포를 자제했던 것은 영화의 반전이 훌륭하여 두 번째 보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는데, 이 영화의 후기는 스포일러를 안 하면 이 영화의 진가에 대해 다 말할 수 없어 보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봅니다. 맘 편하게 두 번 볼 수 있는 OTT채널에서 오픈한 것은 관객을 위한 감독이나 제작자의 배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보면 더 소름 돋습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을 느끼며, 사람이 사기를 당하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우선, 이 영화의 번역을 맡으신 황석희 님의 인스타에서 내용을 가져왔다는 것을 밝히며, 두 번째 볼 때 다시 한번 봐야 할 부분들에 대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1. 블랑이 욕조에서 줌으로 얘기하던 사람은 안젤라 랜스버리, 스티븐 소더하임, 나탸사 리온, 압둘 자바 : 한국으로 치자면 김혜자 배우, 정명훈 지휘자, 한기범 선수 같은 분들이 있는 것.

2. 유람선 탑승 전 주사기로 입에 쏴주던 남자는 에단 호크 ; 계획한 건 아니지만 문나이트 찍느라 가까운 부다페스트에 있어서 찍게 됨.

3. 매 시간 뎅! 하고 나오는 효과음은 조셉 고든 래빗이 더빙한 것. 조셉 고든 래빗은 첫 편에서도 티브이 속 드라마 남주 목소리 더빙으로 카메오 출연한 적이 있음.

4. 뎅! 소리를 작곡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필립 글라스. 미니멀리즘의 대가다.

5. 버디의 집에서 바흐의 '작은 푸가 사단조'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첼리스트 요요마. 첼리스트답게 바흐 연주 앨범이 엄청나게 많다.

6. 어몽어스는 마피아 게임과 비슷, 클루 게임은 단서 추적 게임. 블랑이 둘 다 더럽게 못한다는 게 킬포.

7. 섬에서 이유 없이 깔짝대는 데롤은 나이브스 아웃 첫 편에 나온 형사 2인 중 어벙한 백인 형사. 라이언 존슨 감독의 절친이며 라이언 존슨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 

8. 마일스가 자신의 살인 미스터리를 자문받았다는 사람은 길리언 플린인데 '나를 찾아줘(Gone girl) 소설 원작자.

9. 섬에 도착했을 때 마일스가 연주하던 곡은 비틀스의 'Black Bird'. 글래스 어니언도 비틀스의 노래 제목.

10. 세라 윌리엄스가 들고 있는 책은 첫 편에 등장했던 제목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중력의 무지개'.

11. 카산드라,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 공주의 이름. 예언의 지혜를 가졌으나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다. 법정에서 억울하게 소리치던 앤디처럼.

12. 글래스 어니언은 '뻔히 보이는 곳에 숨겨진(hidden in plain sight)'이라는 의미의 은유로 종종 사용된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뻔히 보이는 곳에 단서를 모두 주고 관객을 능욕하는 수준으로 장난을 침.

13. 빨간 봉투의 꼬투리가 초반 블랑과 마일스가 대화하는 씬에서 이미 액자의 한가운데서 보인다.

14. 듀크의 사망 신 - 듀크가 핸드폰을 마일스에게 내밀며 무언의 협박을 하자 마일스는 듀크를 껴안는다. 오른손은 듀크의 목을 두르고 왼손으로 듀크의 권총을 꺼내 자신의 허리춤에 넣는다. 이 행동이 모두 훤히 보인다. 

15. 권총을 훔친 마일스는 그대로 Bar로 가서 술을 만드는 척 권총을 꺼내 얼음통에 넣는다. 이때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얼음통에 넣는 게 모두 화면에 나온다. 총이 분명하게 보인다.

16. 마일스가 듀크에서 잔을 노골적으로 넘기는 장면도 뻔히 나온다. 이때 버디의 춤을 보라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17. 듀크 사망 후 - 마일스가 앉아 있는 소파 바로 앞에 휴대폰이 놓여 있다. 마일스는 휴대폰을 자신의 뒷주머니에 넣고 친구들이 자길 노렸다며 연극을 시작. 온갖 호들갑을 떨며 블랑의 뒤에 숨는다. 이 모든 신에서 마일스의 뒷주머니엔 검은색 휴대폰이 1/4쯤 삐져나와 있다. 심지어 블랑의 뒤에 숨은 신에선 휴대폰이 삐져나온 마일스의 뒷모습을 2초 정도 노골적으로 카메라가 잡기도 한다. 

18. 글래스 어니언은 17, 18세기에 사용하던 양파 모양의 커다란 유리병. '붕괴자'들의 단골 술집 이름이 글래스 어니언이었는데 아마 마일스는 글래스 어니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말 그대로 유리 양파라고 생각하여 거대한 글래스 어니언을 만든 것일 빙구 같은 가능성.

19. '돈지라르'는 선장이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 '쓰레기(piece of shit)'을 'pisceshite'라고 발음해서 생긴 오해.

 

 

 

인간의 얄팍함에 대하여

아, 이것이 사기로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영화입니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라는 말이 얼마나 얄팍한 환상이 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일말의 가책 없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사기꾼 앞에 얼마나 사람이 까맣게 속을 수 있는지.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가 눈앞에서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 그 진실을 외면하던 이들이, 자신이 물고 있던 '황금의 젖꼭지'가 사라지자 돌변하는 모습마저, 통쾌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서운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은 현실에도 분명히 존재할 모습이니 말입니다. 

 

올바른 단어 하나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그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기회를 훔치고 꾸며내는 것은 천재적일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해냅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위험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나의 이익만을 위해 내달리는 인간 마일스. 영화에서는 무너졌지만, 현실에 수많은 '마일스'들은 우리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뻔뻔한 거짓말로 코를 백 번도 베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눈앞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거짓말에 휘둘리는 일이 없으시길. 새로운 한 해에는 내 코 석 자 잘 지켜내는 새로운 한 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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