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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닿을 것 같은 사실적인 판타지

 

딱 오늘 경제 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기업도, 중기도 희망퇴직... 3040 직장인도 공포 떤다> - 출처 : SBS 뉴스, 김수영기자

 

코로나로 인해 발발된 물가폭등 현상, 40년 만에 진행되는 미친 것 같은 금리인상, 21세기에 볼 줄 몰랐던 전쟁상황까지. 지금의 경제는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이 이런 경제상황 때문에 취업이 힘들었던 것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취업이 힘들고, 직장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힘든 청춘의 이야기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 영화는 힐링무비로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좋은 영화이고 물론 힐링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손을 뻗으면 손에 닿을 것 같지만, 닿기는 또 쉽지 않은 판타지 같은 영화입니다. 당장 취업이 안되고, 일에 지친 직장인이 1년씩이나 귀농하여 돈을 벌지 않고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지만, 그렇게 다 내려놓고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들고, 생각보다 더 많은 마음을 먹어야 가능합니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고향집에 내려가는 혜원의 마음은 분명 허기졌을 것입니다. 도시의 인스턴트 도시락만 먹던 그녀가 다시 내려온 이유도 '배가 고파서'였습니다. 지치고 허기진 마음으로 내려온 그녀의 모습에 '나'를 투영시켜 내가 그 안에 있는 듯한 기분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주 한달살기를 하다 한 달을 사는 게 아니라 영영 거기로 거쳐를 옮겨버린 지인이 어지간히 부러웠으나, 그것이 내가 되지 못한 탓에 부러워만 하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였다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런 영화가 또 있어준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먹고 산다는 것, 별 거 아닌데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는 크게 별일 없이 농사를 짓고, 집을 손 보고, 산책을 하고, 친구들과 한 잔 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며 흘러갑니다. 평화롭지만 분명하게 할 일이 넘쳐나는 농촌의 일상은 여유롭지만 바쁘게 돌아갑니다. 농사짓는 법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야무지게 뚝딱뚝딱 농사를 해내는 혜원이 여간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농사는 정말 손이 많이 갑니다. 도시에서는 마트에 가서 돈 주고 사 오면 그만이지만, 시골에서는 하나하나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하고, 고, 수확한 작물과 과실들을 갈무리하다 보면 종일 일이 많습니다. 

혜원은 수고스럽게 거둔 농작물들로 정성스럽게 한 끼 한 끼를 차려먹습니다.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야무지게 반죽을 하고, 발효를 시키고, 꽃도 튀겨먹으면서 다채로운 계절의 맛을 봅니다. 

혜원의 어머니는 혜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혜원을 두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나 혜원의 어머니는 혜원에서 레시피를 남겨줍니다. 

 

잘 지냈냐, 어떻게 지냈냐는 말 한 마디 없이 레시피를 남긴 어머니의 마음은 사실 영화가 아니라면 정말 기행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 레시피가 전하는 마음은 꽤나 깊고 단단합니다. 혜원이 그렇게 야무지게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해내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전해준 것입니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을 그대로 해낸 사람이 혜원의 어머니이신 셈인데, 쉽게 하기 힘든 일이니만, 한 사람이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데 그만한 법이 있을까요.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는 말을 합니다. 기운 '기(氣)' 자의 중심부에는 쌀 미(米) 자가 들어갑니다. 기운을 차리려면 쌀을 먹어야 한다고, 옛날부터 한국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은 맛집요리를 손쉽게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 손쉽게 터치 몇 번으로 온갖 맛있는 산해진미를 다 먹다가도, 어느 날 별일 없이 육수 내서 끓여 먹은 된장국 하나, 김치 하나 놓고 먹은 밥에 희한하게 얹혀 있던 속이 내려가는 일이 있습니다. 저 힘든 일은 어떻게 다 해,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수고로움이 절대 허투루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수고로운 것은 그저 내 몸을, 내 마음을 가만히 버려두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업무를 마치고 지친 저녁, 혹은 주말. 기운을 잃고 엎어져 있는 내 몸에 든든한 한 끼라도 차려주려 다시 일어나 육수 낼 물을 올리는 것도, 판타지를 내 일상에 조금이라도 끌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하루입니다. 이 하루를 얼마나 이어나가느냐가 가 나를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해 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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