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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알기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환경을 바라보는 고전적이지만 새로운 시각

 

이 영화의 배경은 아발로니아. 이곳은 분지형태의 구조를 가진 나라로 지평선은 보이지 않고, 온통 에베레스트 산 같이 높고 험난한 산으로 둘러싸인 넓지만 고립된 공간입니다. 전설적인 탐험가인 아버지 '예거 클레이드'와 그의 아들 '서처 클레이드'는 함께 지평선을 찾기 위해 탐험하던 중, 스스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식물을 발견합니다. 계속 지평선을 찾기 위해 나아가자는 아버지와 발견한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돌아가겠다는 아들은 결국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각자 갈 길을 갑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아버지는 그 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들 '서처'는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가 되어 말이 마차를 끌던 고대 중세시대 같던 아발로니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와 편리한 전구, 전자기기들이 가득한 도시로 발전시킵니다. '서처'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살아있는 건전지와 같은 식물로 농사를 지어 판매하여 부와 명성을 이룹니다. 그러나 갑자기 식물이 원인 모르고 점점 시들기 시작하고, 그 현상은 온 나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대통령 '칼리스토'가 찾아와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 다시 탐험을 떠날 것을 제안하고, '서처'는 그와 함께 갑니다. 아들 '이든'이 탐험선에 몰래 탑승한 것을 모른 채. 

 

이 영화는 물론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꽤 많은 디즈니 영화들이 그러하듯 가족들은 갈등과 반목 속에 위기를 맞이하고, 서로의 필요와 다름을 이해하면서 화해하고 포옹하며 끝이 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를 반전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반전의 포인트는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탐험대는 우연히 산 아래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마치 외계행성 같습니다. 기괴하고 낯선 생물들이 기어 다니고, 날아다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바로 한 끗 차이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존재합니다. 전기를 발생시키는 식물의 뿌리는 하나의 굵은 뿌리로 이어져 그 동굴의 아주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는데, 쫓아가다 보니 그 시작부터 전염병에 감염되어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뿌리를 휘감고 있는 감염원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이 산성 호수를 지나 뿌리의 심장부에 다다랐을 때, 정말 그곳에는 이 세상의 심장이 있습니다. 그 심장 주변에 이상한 새들이 끊임없이 전기 식물의 뿌리를 공격하고 있어 전기 식물이 시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전기 식물을 살리기 위해 그 이상한 생물들을 처치하기로 결정합니다. '서처'는 아들과 싸우고 탐험대를 뛰쳐나갔다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되고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바다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 아래는 반전포인트입니다. 크게 인기 있는 영화는 아니었어서 굳이 결말을 가릴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 

 

 

 

 

'서처'는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거북이의 눈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탐험하고 있던 동굴은 거북이의 위장, 내장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오던 환경은 그냥 사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발견한 전기 식물은 사실 거북이에게 해로운 것으로 마치 병균처럼 거북이의 심장을 옥죄어 오고 있었고, '서처'를 비롯한 아발로니아 사람들이 전기를 발전시켜 편리하게 살면 살 수록 거북이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상한 생물들, 새들은 면역세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거북이를 헤치는 전기 식물을, 거북이를 살리기 위해 죽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전기 식물을 지키고자 하는 대통령의 무리와, 자신들이 발견한 것임에도 거북이를 살리기 위해 전기 식물을 뿌리 뽑고자 하는 클레이드 가문이 싸우기 시작하고, 네, 결론은 클레이드의 삼부자와 서처의 아내 '메리디언' 포함 '퍼덕이', 강아지 '레전드'까지 힘을 합해 전기 식물을 뿌리 뽑습니다. 

 

 

디즈니의 2 연속 흥행 실패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들어간 제작비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최소 1억 달러(1300억여 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으며, 2000년 '쿠스코? 쿠스코!'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그 이유가 이 영화의 사랑스럽고 둥글둥글한 그림체와는 달리 설득의 과정이 생략된, 꽤나 극단적인 성향의 환경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거북이'를 살리기 위해 전기 식물을 뿌리 뽑고 돌아온 아발로니아. 아발로니아 사람들은 미리 채집해둔 전기 식물의 열매를 아껴 필요한 곳에만 전기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과거와 같은 정말 친환경적인 생활을 합니다. 그들의 얼굴엔 딱히 불만이 없어 보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이 영화에는 5분, 10분짜리 단편영화였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가득 채웠을 듯한 코드들이 즐비해있습니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이든. 남미 혼혈로 보이는 여성 대통령 '칼리스토'. 미성년자인 '이든'은 남자를 좋아합니다. 그가 키우는 강아지는 한쪽 발이 없는 장애를 가진 강아지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문제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모든 코드들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흘러갑니다. 어쩌면 그것은 이상적인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이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일지라 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에게는 낯선 맛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기 위해 조금은 편안하게 제공하는 거나 그것에 대한 이해 지점을 제공하는 것이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반찬이 너무 낯설어서, 메인디쉬의 맛이 꽤 괜찮은데도 싸잡아 점수가 깎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의 메인디쉬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스트레인지 월드'는 자연 그 자체였고, 그 자연은 살아있었습니다. 자연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이야기하는 꽤나 충격적이고 시각적인 은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고대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 누군가의 상상력이나 고대 설화에서 나왔을 법한 이야기입니다만 '서처'가 '거북이의 눈'과 마주쳤을 때는 정말 소름 돋았습니다. 내가 함부로 찔러댄 무언가가 살아있었다는 것, 분명히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올 겨울은 50년 만의 겨울가뭄이라고 합니다. 남부지방은 너무 가물다 못해 몇몇 지역은 단수가 될 지경에 이르렀고, 광주광역시에서는 이대로 충분히 가뭄이 해결되지 않으면 3월 즈음에는 제한급수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이 나지도 않았고, 배수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은 나라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기후변화 때문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며, 사실 '기후변화'라고 부르는 이 파괴된 환경의 균열이 내가 딛고 선 땅 바로 밑까지 다다라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지만, 저는 여전히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편안하게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제가 사용하는 '전기'를 뿌리 뽑을 정도의 강단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은 다회용 빨대를 쓰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위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으로 작은 변화를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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