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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그 영원한 이름의 절정, 한산도대첩

2014년 명량을 보고 난 이후, 김한민 감독의 영화가 3부작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장 보고 싶은 영화는 '한산'이었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학익진 전술로 유명한 전투. 임금은 국경까지 도망가고,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왜군들의 기세에 위태로웠던 조선을 구한 대승리의 전투.  보통 영화는 결말을 알고 나면 재미가 없어야 하는데, 결말을 알면서도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대첩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일본을 확실하게 누르고 승리한 그 시원스러운 쾌감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그 쾌감을 확실하게 채워줍니다. 제가 꼽기로는 전투장면에서 가장 클라이맥스는 두 장면 었습니다.

한산도대첩의 백미라면 역시 학익진 전술입니다. 바다 위의 수성. 방어를 해야지, 공격을 하러 나가는 것이 무모하기 짝이 없다고 불만이 많았던 원균 장군이, 학익진 전술이 완성된 공격법을 보고 중얼거린 말입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을, 완전하게 이해시킨 전술이었습니다. 바다 위에 성을 쌓아 조선의 바다를 지킨다. 왜군들은 조총과 백병전을 통해 해군이면서도 상대편의 배에 뛰어올라 마치 육지전과 같은 싸움을 했습니다. 이런 왜군들의 성향을 이용하여 바로 코앞 50보까지 쫓아와 본인들이 승기를 잡았다고 믿은 순간, 화포를 일제히 한 번에 쏟아내어 말 그대로 왜군을 쓸어버립니다. 일반적인 화포가 아닌 자잘한 조약돌과 같은 포탄이 가득하여 조총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우리가 왜군에게 밀렸던 이유 중 하나였던 조총의 완벽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활시위를 끝까지 당겨 멀리 쏘아 보내는 활처럼, 화포가 쏟아지기 전까지 바짝바짝 입이 마르다 시원스럽게 날아가는 활처럼 전율이 짜릿하게 돋았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역시 거북선의 등장입니다. 인기 게임 '슈퍼 마리오'에 나오는 악당이 거북이인 이유가 임진왜란 때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된 '거북선'의 거북이 이미지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거북선에게 된통 당한 왜군들은 공포에 질려 거북선을 '복카이센(전설의 해저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용의 머리를 단 채 불을 뿜으며, 거침없이 돌진해 오는 거북선을 본 왜군들은 분명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목이 들어갔다 나오는 자라에게서 착안해, 속도가 느리고, 충파 시 서로 얽혀 치고 빠지지 못하는 약점을 보완한 거북선은 일당백으로 왜군을 판옥선을 부수고 다닙니다. 설계도를 빼내어 약점을 간파했다고 믿고 거만하게 거북선을 바라보던 왜군 앞에서 거북이 머리가 쓱 들어갈 때, 당황하던 왜군의 얼굴을 보며 짜릿함을 느낀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왜 이순신에 열광하는가?

확실하고도 완벽한 승리. 전투가 끝나고 난 후, 화면에는 단단한 바윗덩이에 부딪힌 허약한 나무인형의 파편들처럼 흩어져 있는 왜선들이 비칩니다. 거의 손상을 입지 않은 조선수군의 배들은 산처럼 그 파편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전투가 일어난 '한산도'의 '한산'은 큰 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산도대첩이 일어나기 전, 왜군 앞에 우리는 마치 무력하고 약한 먹잇감처럼 그들의 앞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빠르고 민첩하게 한반도를 장악해나가는 왜군들. 화려하고 현란한 무기와 갑옷으로 치장하고, 신식무기인 조총을 들고 밀려오는 왜군들 앞에 우리 의병들은 돌멩이, 낫과 같은 농기구를 들고 달려듭니다. 그것을 보면 누구라도 이 전투는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전투로 조선은 약자에서 강자가 됩니다. 단순히 힘이 센 강자가 아니라, 의(義)로 무장한 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산과 같은 거대함을 가진 강자가 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무패의 장수입니다. 전투에 나가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전설의 전략가.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마법 같은 전략을 구사한다면,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신묘하고, 절묘하나 그 안에 많은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남기신 수많은 고민의 밤들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는 일기가 그 강함이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담금질을 통해 태어난 전략임을 알게 합니다. 

왜 우리의 역사는 항상 힘겨운 상황 속에서 굳센 의지로 이겨내야만 하는 것인지, 그냥 편하게 그저 강한 힘으로만 이길 수는 없는 것인지 원망스럽다가도, 이 전쟁이 무엇이냐 묻는 물음에 한 마디로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라 정리하는 그 말에서 답을 찾습니다. 

사전적 의미로써 '의(義)'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바른 도리를 의미합니다. 수많은 역사와 세월 속에서 생각보다 평범하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이제 너무 거창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지만, 지금의 약하고 작은 개인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오늘을 위해 필요했던 거대한 산은 분명히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큰 산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감동과 위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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